[대법] "살해 또는 사망에 고의 인정할 수 없어"

술에 취한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찰관을 매단 채 질주하다가 땅에 떨어뜨려 숨지게 했더라도 자동차보험회사는 보험금을 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운전자에게 경찰관을 숨지게 한 데 대한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판결 이유다.

대법원 제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4월26일 음주운전자를 단속하다가 숨진 경찰관의 부모와 여동생이 H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2007다10757)에서 보험사의 상고를 기각, "H보험사는 원고들에게 모두 3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손해배상액은 인정된 손해액에서 김씨 가족이 받은 책임보험금 1억원과 사고 운전자가 피해보상금 명목으로 공탁한 3000만원을 공제한 액수다.

최모씨는 2005년 3월14일 저녁 소주 2병과 양주 1병을 동료들과 나누어 마신 후 차를 몰아 3월15일 0시15분쯤 울산 남구 신정2동 시외버스정류장 앞길을 지나다가 단속중이던 경찰관 김모씨가 차량을 세운 후 운전석 창문으로 음주감지기를 집어넣어 측정을 요구하자 그대로 차량을 출발시켜 약 600m 떨어진 지점에 김씨를 떨어지게 해 숨지게 했다.

사고 당시 최씨는 혈중알콜농도 0.149%의 과음상태였으며, 목격자들에 따르면 최씨는 경찰관 김씨를 매단 채 시속 100km 이상의 속력으로 달아났다.

최씨는 경찰관 김씨를 떨어뜨린 후에도 그대로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다가 맞은 편에서 진행해 오던 오토바이를 충격해 오토바이 운전자를 숨지게 하고, 이어 도로 펜스를 재차 충격해 더 이상 차량을 운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정차했다. 최종 정차 지점은 경찰관 김씨가 떨어진 지점에서 120m정도 떨어져 있다.

김씨의 가족들이 최씨가 보험을 든 H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록에 의하면 최씨가 사고 당시 김씨의 음주운전 단속을 거부 내지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김씨를 사고차량에 매단 채 난폭 운전을 한 것으로 보일 뿐이고, 나아가 최씨에게 그와 같은 난폭 운전으로 인하여 김씨를 살해 또는 사망하는 것을 용인 내지 묵인하고서도 그와 같은 행위를 감행하고자 하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상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자동차보험약관상 면책사유인 '고의에 의한 사고'라 함은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일정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행하여 발생한 사고를 말하고, 사고발생의 기본이 되는 행위 즉 음주운전 행위 또는 경찰관의 음주운전단속(공무집행)을 방해하는 행위에 고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에 의하여 발생할 결과에 대한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가 없는 이상, 고의에 의한 사고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2007/05/07